2020년 12월 1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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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도전자 ‘스캇 해밀턴’ 이 주는 감동이야기
2020. 10.16(금) 14:54확대축소
-환경스포츠신문사 본부장 -21환경교육중앙회 전문위원
미국 피겨 스케이팅 TV 해설자로 진정한 인생의 도전자로서의 삶을 이어오고 있는 지정한 도전자 ‘스캇 해밀턴(1958년 생)'의 인생역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생후 6주, 어느 신원을 알 수 없는 미혼모의 아이로 방기되다, 오하이오 주 보울링 그린 대학 교수인 언스트 해밀턴 씨 부부(어머니는 당시 초등학교 교사)에게 입양된 ‘스캇 해밀턴’.
그는 만 2살 무렵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소화 장애에 시달려 성장이 거의 멈추다시피 했고 9살이 될 때 까지 여러 병원을 전전했으나, '괴질'이라는 진단 뿐 병명을 알지 못했다.
해밀턴 씨 부부가 '이제는 스캇의 회복이 어려우니 포기할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진단과 조언을 듣게 된다.
그 후 병원의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병 수발에 지쳐 있던 해밀턴 씨 부부도 그저 그렇게 하는 수 밖에 하고 있을 때, 이들 가족 주치의가 자신의 딸이 스케이트 교습을 받으러 다니니 주말 교실에 스캇도 같이 데리고 가면 양부모가 그 반 나절이나마 쉴 수 있지 않겠느냐고 건의한 것이 스캇 해밀턴이 피겨와 만나게 된 계기다.
소화 장애 때문에 코에 튜브를 꽂고 다니던 이 병약하고 자그마한 아이는 피겨 스케이팅에서 삶의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되고, 얼마 후 그 괴질은 '자연 치유'라는 기적적 진단을 받게 된다.
그러나 스캇 해밀턴이 선수로써 꽃을 다 피우기 전인 1977년, 어머니 도로시 해밀턴 씨가 유방암 투병 끝에 사망하고 만다. 스캇을 치료하기 위해 공부를 하며 박사학위를 받아 보울링 그린 주립대학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헌신적인 어머니를 잃은 스캇 해밀턴은 이후 '피겨 스케이팅을 통해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무서운 노력을 쏟고 그 결과 1980~81년 시즌부터 4 시즌 동안 13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으며 1984년 올림픽 챔피언이 된다.

올림픽 직후 만난 밥 케인을 매니저로 하여 당시 최고의 아이스 쇼단인 ‘아이스 캐페이드’에 입단한 스캇 해밀턴은 그만 2년 후 오너가 바뀐 그 아이스 쇼단에서 퇴출된다.
이유는 남자 스케이터가 아이스 쇼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밥 케인과 스캇 해밀턴은 독자적인 아이스 쇼인 ‘스타즈 온 아이스 쇼’를 결성, 지금에 이르고 2001년 공식 은퇴할 때까지 스캇은 공동 기획, 연출을 맡았다.
스캇 해밀턴은 자신의 재단 뿐 아니라 현재 장애인 올림픽 이사, 크리스티 야마구치의 아동 자선 단체인 Always Dream Foundation 이사, 아동 신장암 환자 자선 단체인 Cathy Lee Ball 재단 이사 등 여러 자선 단체의 운영진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스캇 해밀턴은 2020년 11월 6일 제2차 복귀 두번 째 무대를 열었다.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도, 끝없는 시련과 도전속으로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그에게서 새로운 힘을 얻었으면 한다고 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유봉 기자 env-news@hanmail.net        유봉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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