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풍광, 도심속 옛 정취를 바라봐요”

손님은 관객이요, 사랑채는 연극무대…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게 매력
백여년 역사 자랑 서울의 대표 관광명소로 관광객 유치와 각종 행사 계획 중
우후죽순 들어선 현대식 건물로 전통 한옥마을이 국적불명 거리로 변해 아쉬움

2013. 06.26(수) 18:45

탐방취재/북촌 <우리집>을 통해 본 온고지신 명암

‘우리집’에 갔다.

안국역 3번 출구에 나서 걷기를 5분여, 기자의 눈앞에 북촌이 펼쳐졌다. 전통한옥과 현대식 커피전문점이 즐비한 북촌 거리는 평일 낮 시간이었음에도 관광객으로 붐볐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의 율곡로와 삼청공원으로 둘러싸인 가회동,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일대를 말한다. 북촌은 현재 역사문화미관지구로 제1종 일반주거지역 도시계획도 예정되어 있다. 전통 한옥이 몰려있는 북촌은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전통한옥에 미친 거주민?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전통한옥체험관, 커피전문점, 식장, 기념품 판매점 등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사람들이 몰리고 돈이 풀리면 북촌 거주민들도 두 팔 벌려 환영할 법도 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관광객이 만들어낸 소음과 오물에 거주민들은 몸살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율도 증가했다. 또 우후죽순 들어선 현대식 건물들로 전통 한옥마을인 북촌은 국적불명의 거리로 변해가고 있다.

]계동에 위치한 한옥체험관 우리집은 매스컴의 조명을 많이 받았다. MBC스페셜 ‘한옥에 미치다’와 KBS의 ‘서울야곡’, ‘다큐멘터리 3일’, ‘아침마당’, TV조선의 ‘북촌별곡’ 등을 통해 소개되며 우리집을 찾는 이도 더 많아졌다.

북촌문화센터 옆 식당을 가로질러 오른쪽에 작은 골목이 이어졌다. 골목 끝에 우리집이 있었다. 사랑채, 별채, 안채가 앉아있는 우리집은 황토로 발라져 있었다. 북촌에서도 유일하게 아궁이와 구들이 남아있는 별채는 우리집만의 자랑거리다.

신영훈 씨가 손수 바른 벽지는 전통방식을 재현했다. 한지를 여러 겹 겹쳐 바르고 말리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2002년부터 우리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인숙 씨는 때마침 출타중 이었다. 기자를 맞이한 사람은 박 씨의 시어머니. 북촌의 타 한옥체험관과 달리 우리집 안채에는 박 씨 가족이 실제로 살고 있다. 기자의 눈에 비친 우리집의 첫인상은 시골집의 정경, 그 자체였다.

첫인상 그대로 정경에 놀라고...

박 씨는 북촌 주민단체 ‘한옥을 사랑하는 주민들 모임(한사모)’의 회장으로 수년간 활동하고 있다. 한사모와 도시시민연대 주최로 개최되는 ‘북촌문화의 날’ 행사 역시 매년 우리집 앞마당에서 벌어진다.

박 씨를 기다리며 우리집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우리집은 보기 드문 ㅁ식의 전통 한옥이다. 지어진지는 100여 년. 오래된 대문을 들어서자, 짧은 복도가 이어졌다. 기와를 쌓아 만든 작은 화단의 양 옆에 별채와 앞마당으로 연결된 두 개의 문이 있었다.

정면엔 뒷마당으로 연결된 기와 문이 있었는데,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상추와 고추를 심은 작은 텃밭이 보였다. 텃밭 안쪽에는 항아리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물어보니, 아침, 저녁으로 항아리를 깨끗이 닦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랑채에 위치한 방은 세 개. 투숙객들은 이곳에서 묵는다. 우리집은 현재 서울시의 소유로, 박 씨도 서울시에 임대료를 내고 있다. 박 씨는 “좀 더 쾌적하게 개보수를 할 수는 없지만, 백년이나 된 한옥이라 보존가치가 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은 달았어요. 한옥과 어울리진 않지만, 쉬려고 온 분들이 더워하니까 너무 미안해서...”. 박 씨는 말끝을 흐리며 미안해했다.

“우리 집 한켠에 남는 방을 열어두며 시작하게 됐어요. 그랬던 게 주변에 알려지고 손님도 늘어나면서 가족들 눈치를 많이 봤어요. 애들이 사춘기 때, 그 불평은 정말 말도 못했죠”.

박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웃었다. 현재 우리집에 사는 박 씨의 가족은 모두 다섯 명. “행사를 할라치면 온가족이 달라붙어서 치러내곤 했어요. 이제는 가족들도 힘들어하고, 일과 가정을 분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아끼는 곳이라 숨기고 싶어요”

우리집은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이 우리집을 찾는 이유는 뭘까. 박씨는 “어울리며 사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호텔처럼 반짝이고 천장이 높은 숙소를 찾는 분들도 더러 계세요. 일본에서 온 할아버지는 화를 내기도 했어요.”

박 씨는 말을 끊더니 인터뷰 장소인 사랑방문을 반쯤 열고 말을 이어나갔다. “저기 보세요. 방문만 열면 북적대며 식사를 하고, 부대끼며 사는 모습이 보이죠? 우리집을 찾는 손님은 관객이고, 저 곳은 연극 무대나 마찬가지에요.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게 바로 우리집만의 매력이 아닐까요?” 박 씨가 가리킨 곳은 박 씨 가족이 사는 안채. 박 씨 시어머니가 화초에 물을 주고 있었다.

박 씨는 우리집을 통해 가까워진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손님으로 만나 친구가 됐고, 그 친구의 친구가 다시 박 씨와 가까워졌다. “한 가족처럼 애틋해요. 우리집을 찾는 사람들과의 좋은 만남, 새로운 관계가 이어지는 그 맛 때문에 계속 우리집을 지키게 됩니다.”

박 씨의 일본인 친구는 우리집이 많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제게 그러더군요. 일본에서부터 우리집을 찾아오는 이유는 바로 제 가족을 보기 위해서 라고요. 아끼는 곳이라 숨겨두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 말을 하며 박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박 씨가 갖고 나온 앨범엔 전통혼례와 전통 돌 사진이 있었다. 박 씨는 사진을 짚어가며 설명했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보존은 우리집이 지향하는 가치입니다. 전통혼례와 돌상 같은 행사를 치루는 것도 그 일환이고요.”

“겸손해야 살 수 있어요”

일본밴드 ‘곱창전골’등의 공연도 우리집 앞마당에서 벌어졌다. “많은 잔치를 우리집에서 벌였습니다. 사람들이 기뻐할 때 보람을 느꼈어요.” 행사 비용을 따져보면 많은 돈을 벌었을 법도 한데, 박 씨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 돈을 생각안하고 행사를 치렀어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이제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하려고 해요. 보시다시피 절 도와줄 인재도 있고요.”

박 씨는 옆에 앉은 젊은 여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박 씨의 말을 꼼꼼히 메모하고 있었다. 우리집은 10월에서 3월까지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여행상품을 개발 중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집을 찾도록, 안채도 비운다는 계획이다.

사랑방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대청마루에서 끝이 났다. 박 씨는 한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옥은 몸을 낮춰야 합니다. 자세를 낮춰야 살 수 있어요. 겸손해야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한옥이에요.”


- 북촌 우리집 게스트 하우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길 33-13 (계동)
- 홈페이지: www.wooriguest.com
- 연락처 : 02-744-0536

김양균 기자 ykkim1999@nate.com        김양균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