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5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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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유래와 불에 타 죽은 개자추 이야기
2021. 10.06(수) 11:39확대축소
중국 산시성 지에시우현의 면산에 있는 개자추 동상과 유적지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에 개자추라는 사람이 있었다.
진 문공이 공자(公子)였을 때 국내 정변을 피해 외국으로 망명했는데, 개자추가 19년 동안 문공을 수행했다. 전란 속에서 임금을 업고 도피하게 되었다.
이때 임금이 ‘고기가 먹고 싶다’ 하여서 주위를 찾아보았으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개자추는 자기 허벅지를 끊어 불에 구어서 임금에게 쇠고기라 속이고 먹였다. 개자추는 이렇게 자신의 몸을 해하면서까지 임금을 보호하는 충신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라를 수복하여 임금이 다시 궁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때 개자추와 함께 온 다섯 신하는 임금과 돌아가 조각(정부 개편)에 들어갔다. 다섯 신하가 같이 돌아가자고 하였으나 개자추는 “나는 팔십 먹은 노모를 집에 두고 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을 알 수 없으니 같이 갈 수 없다. 너희들은 빨리 돌아가 정부 개편을 추진하라. 나에게는 뒤에 연락을 해 달라”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팔십 노모는 살아 있었다. 개자추는 노모를 모시고 지내면서 이제나저제나 조정에서 소식이 있을까 기다렸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조정으로 돌아간 임금과 다섯 신하는 편안한 궁정 생활에 개자추를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삼 년 정도 되었을 때 임금은 문득 개자추 생각이 났다. “아하! 이거 개자추를 잊어버렸었구나.” 임금은 사자(使者)를 시켜 개자추를 데려오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개자추는 아무리 기다려도 조정에서 소식이 없자 “내가 어째 이렇게 살고 있을까” 탄식하며 팔십 노모를 업고 중국 부춘 산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임금의 사자가 개자추의 고향에 가서 소식을 물어도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계속 수소문을 하다 보니 어떤 사람이 “개자추는 산으로 올라갔다”고 말해 주었다.
지금의 산시성 지에시우현의 면산으로 올라가 개자추를 찾아 헤맸으나 그 험한 산천에 개자추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에잇! 이거 안 되겠다” 하며 사자는 산에 불을 놓았다. 개자추가 불길을 피해 산에서 내려올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자추는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3일동안 불길 속을 헤매다가 솔밭 밑에서 팔십 노모를 업은 채 타 죽었다. 그렇게 불에 타 죽은 개자추를 안타깝이 여긴 임금은 “개자추 죽은 날에는 찬밥을 먹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 즉 불을 지피지 말라는 것이었다. 불이 없으니 찬밥을 먹을 수밖에 없어 이날을 한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식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4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서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이다. 보통 4월 5일이나 4월 6일쯤이 되며, 이때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사초(莎草)를 하는 등 묘를 돌아본다.

유봉 기자 env-news@hanmail.net        유봉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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