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5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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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바람둥이‘카사노바' 의 일생
2023. 11.09(목) 10:49확대축소
김정일 -환경스포츠신문사 조직위원장 -21환경교육중앙회 고문
카사노바, 그의 이름은 오늘날 바람둥의 대명사가 됐다. 세기의 바람둥이로 불리는 카사노바의 수많은 여성들과의 애정행각은 그 당시로써도 화려하고 대담무쌍했다. 연애지상주의자 카사노바의 일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파란만장하다.
성적 쾌락주의자이자 독실한 기독교인, 사기꾼이자 외교가, 뛰어난 작가와 양심도 없는 거짓말쟁. 이 모순된 단어들 모두 카사노바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카사노바( 1725년 ~ 1798년)는 1725년 4월 2일에 이탈리아 베네토주의 주도인 베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무명배우였고 결혼 후 1년여 만에 얻은 첫 아기가 바로 카사노바였다. 귀족의 후원을 받지 못한 배우 사이에서 태어난 카사노바는 소외된 계층의 아이였다.
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카사노바의 부모들은 카사노바가 1살도 채 되기 전에 유럽 순회공연을 떠나버렸다. 그의 부모 대신 카사노바를 맡아 기른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카사노바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9살의 카사노바는 외할머니에 의해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보내졌다.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수학과 언어, 철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어린 카사노바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재담꾼이기도 했다.
12살이 된 카사노바는 사제가 되기 위해 파도바 대학에서 교회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서민계층 아이들이 그렇듯이 카사노바에게도 직업의 선택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사제는 명예와 부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안정된 직업이었다.
17살의 카사노바는 사제 수업을 모두 마쳤고 첫 번째 성 경험을 한 것도 바로 그 해였다.
나네트와 마르통이라는 두 고아 자매가 동시에 카사노바를 유혹해왔다.
카사노바는 첫 연애 경험을 통해 한 여자와 사랑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여성과도 잘 지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연애 철학이 되었다.
많은 여성을 유혹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카사노바는 사제의 꿈을 잠시 접고 연애 행각에 집중했다.
카사노바는 어느 밤처럼 연주를 마치고 곤돌라에 올랐는데 마침 그 곤돌라에는 귀족 가문 출신이자 베니스의 시의원이었던 마테오 브라가딘경이 타고 있었다.
배가 출발한지 얼마 안 돼 갑자기 브라가딘경이 뇌졸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그는 브라가딘경을 재빨리 그의 집으로 옮기고 고통스러워하는 이 노인을 이틀 동안 침대 맡에서 정성껏 간호했다.
브라가딘경이 회복되자 카사노바는 그에게 의학적 힘이 아닌 자신 내부에 있는 초자연적 힘으로 그를 치료했다고 이야기했고 마법에 흥미가 있었던 브라가딘경은 생명의 은인이자 심령적인 힘이 있다는 카사노바에게 매료됐다.
카사노바에게 완전히 매료된 브라가딘은 자연스럽게 그의 양아버지가 되겠다고 이야기했고 카사노바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카사노바는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에서 갑자기 부유하고 권력 있는 귀족이 됐다.
낮에는 도박을 했고 밤에는 여성과의 쾌락을 좇았다.
그는 1755년 7월 26일, 30살이 된 카사노바는 마법과 무신론 혐의로 유럽에서 경계가 가장 삼엄한 베니스의 감옥에서 5년간 복역하였고, 탈옥을 시도한다.
그의 양아버지 브라가딘경이 카사노바를 위해 제일 좋은 감방으로 카사노바를 옮겨주었다. 그후 1756년 11월, 카사노바는 유럽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감옥을 1년여 만에 빠져나왔다.
카사노바는 가는 곳마다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고 자신의 탈출 담을 담은 책이 18세기의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
어딜 가나 환영받았던 카사노바는 세계 최초로 전국 복권을 만드는 일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또한 루이 15세의 스파이로 일하기도 했다.
속세와의 모든 연을 끊고자 1760년, 세기의 바람둥이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평범한 수도승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결심은 24시간도 안돼서 사라졌다
거리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바라보면서 수도승이 되려던 그의 생각은 순식간이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카사노바는 시와 소설, 논문으로 모두 42권의 책을 썼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저서는 모두 12권에 달하는 자서전이었다.
1798년 6월 4일, 세기의 바람둥이는 요로의 심각한 감염 증상과 그간 겪은 많은 성병으로 인해 7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왔고, 기독교인으로 죽는다” 이것의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김정일 en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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