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5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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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호의 뗏목’과 이태원 참사
2023. 11.14(화) 17:12확대축소
문달주 발행인 ▲충남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환경스포츠신문사 발행인 ▲21환경교육중앙회 회장 ▲저서 : 살며생각하며
200년 전에 메두사호의 비극이 있었다. 
1816년, 프랑스의 대형 선박 메두사호는 세네갈을 점령하기 위해 떠난 군인들을 태우고 항해하던 중, 세네갈 근처 해안에서 암초에 걸려 조난을 당한다.
배를 버리고 구명보트로 탈출했지만, 그 구명보트에는 선장 등 직위가 높은 250명만 탈 수 있었고, 나머지 직위가 낮은 사람들은 구명보트에 메단 뗏목에 태웠다.
모터가 없던 시대라 구명보트와 뗏목을 함께 할 수가 없어 각자 살길을 도모하게 된다. 혹자는 선장이 뗏목을 끊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이것이 메두사호의 뗏목이다.
망망대해에서 버려진 메두사호 뗏목의 사람들은 공포와 충격 속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당시는 구조가 쉽지 않은 시대라서 13일 동안 해류를 따라 떠돌며 생명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밧줄이 끊어져 뗏목 위에서는 한모금의 물과 음식을 차지하기 위해 피로 물든 싸움이 벌어졌다.
거기에서도 안전한 중앙을 차지한 사람들은 상급병사 등이었고, 나약하고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뗏목 바깥쪽에 위치했다. 
가로 세로 15m, 8m의 좁은 공간에 넘치는 사람을 태운 뗏목은 강한 자와 약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로 분류되어 위협과 폭행 속에 바다를 떠돌았다. 
사람은 많고 뗏목을 불안정하니 강한 자는 바깥쪽의 병사와 약자들을 바다에 던져버렸다. 첫날에만도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20~30여명에 해당한다고 한다.
고통과 배고픔과 심리적 불안으로 불만이 생기자 반항도 생겼고, 이에 대해 총으로 위협하며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5일이 넘어서자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기도 했다고 생존자는 밝혔다.
10일이 넘어서자 30여명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메두사호의 뗏목은 13일을 넘기고서야 겨우 구조를 받게 된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은 15명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5명은 며칠 후 죽었다.
메두사호가 좌초된 후 뗏목으로 탈출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기술하면서, 서로를 죽이고 심지어 동료의 시체까지 뜯어 먹었던 일들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충격을 주었다.
메두사호에 탑승했던 생존자가 사고 경위를 말한 내용이 실리자, 온 프랑스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메두사호가 좌초된 후 뗏목으로 탈출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기술하면서, 서로를 죽이고 심지어 동료의 시체까지 뜯어 먹었던 일들이 공개된 것.
사람들은 인육을 먹었다는 쇼킹함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밝혀지는 강자의 약육강식, 그리고 국가, 사회 지도층의 부조리에 계속적인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에서 낭만주의 미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메두사호의 뗏목’이란 작품이 완성되게 된다.
19세기 프랑스는 혁명의 저항이 약해지고 루이 18세가 등장하여 과거 회귀를 노리던 시대였다.
국제적 관계에서도 그 영향이 생겨서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아프리카의 세네갈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이양 받았다. 
혁명으로 인하여 세계 식민지 건설의 강자인 포르투갈과 영국에 비해 식민지 확대에 뒤쳐졌던 프랑스는 세네갈을 발판으로 제국주의를 다시 확대하려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 첫 출항이 메두사호였다. 
선장은 보수적인 왕당파의 퇴역한 함장이었고 식민지 이주민은 모두 400명가량 되었다. 
선장은 루이18세의 측근으로, 퇴역한지 오래되어 감각이 떨어지고 주변인의 신뢰도 없지 못하는 자였지만 왕당파에 줄을 잘 서서 선장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다.
이른바 관피아다. 식민지 건설이 잘 되면 부와 권력을 쥘 수 있었다. 

사고 경위와 그간의 일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프랑스는 충격에 휩싸였다. 고고하고 지성인인양 하면서도 식민지 찬탈로 비인간적 만행을 하던 사회의 악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더불어 인간성의 나약함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은 대체 어느 정도까지 인간적일 수 있을까에 대한 철학적 질문도 던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는데도 과거의 체제로 회귀하려는 성향을 가진 보수적 왕정에서는 책임지는 자가 없었다.
대체로 보수성이 강한 사회에서는 약자의 피해를 눈감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선장이 재판에 세워졌으나 겨우 금고 3년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권력과 같은 편이었던 선장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대형사고를 치고도 최소한의 처벌로 죄를 피해갔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이 구체제를 용인하고 지지하는 순간, 권력의 편에 있던 자들은 잘못을 하고도 회피해 가는 길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도‘세월호 사건’으로 무고한 수많은 학생들이 바다에서 죽어간 사건이나, 21세기인 2022년 10월 서울 이태원 골목길에서 압사 또는 선채로 죽어간 사건 등을 보면서 온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전체 탑승자 476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다.
이태원 참사는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경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119-3번지 일대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핼러윈을 즐기려는 다수의 인파가 몰리면서 300명이 넘는 압사 사상자가 발생한 대규모 참사다(사망 156명, 부상 197명, 외국인 사망자는 26명).
메두사호의 뗏목,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등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사명을 다하지 못한데 기인한다.


유봉 기자 env-news@hanmail.net        유봉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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