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토요일)

공자의 생애
2024. 06.05(수) 13:15확대축소
박찬욱 취재본부장
공자는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원래 송의 귀족이었으나 노(魯)로 망명하였다.
70세가 넘은 아버지(숙량흘)와 16세인 어머니(안징재)와의 사이에서 공자가 태어났다. 어머니 안씨가 이구산(尼丘山)에 기도하여 공자를 얻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으나, 공자가 3세 때 별세하여 빈곤 속에서 자랐다. 공자는 키가 9척 6촌이나 되어 사람들이 모두 '키다리(長人)'라고 부르며 이상하게 여겼다.
공자는 19세 때인 BC 533년 노나라 계씨의 창고 관리직이 되었다. BC 517년 삼환씨의 제가에 실패한 소공(昭公)과 함께 제(齊)로 갔다. 제에서 관직 등용에 실패한 뒤 노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나는 십오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이 되어 뜻을 세웠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라고 스스로 말했듯이 공부에 힘썼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였으며, 수양을 쌓아 점차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말단 관리였으나, 51세 때인 BC 501년 노의 정공(定公)에게 중용(重用)되었고, 56세 때 대사구(大司寇)로 재상이 되었다.

하지만 노의 정치에 실망하고 벼슬을 버리고 자신의 경륜을 펼치기 위해 주유 천하의 길을 나서 위, 조, 송, 정, 진, 채, 초를 방문하였다. 그 후 공자는 14년간 문하생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를 계속하며 이상실현을 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BC 484년 69세 때 그 불가능함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한다. 이 무렵 아들 이(鯉)와, 고제자(高弟子) 안회(顔回) 및 자로(子路)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었고, 74세로 자공(子貢)·증삼(曾參) 등 뛰어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하였다.

제자는 모두 3,000명이며, 특히 육예(六藝:禮·樂·射·御·書·數)에 통한 문인(門人)이 72명이라고 한다.

공자는 이상을 미래에 건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언행은 《논어(論語)》를 통해서 전해지고, 그의 사상을 알아보기 위한 확실한 자료도 《논어》밖에 없다.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고 말했다.
사마천은 말하기를 "천하에 군왕에서 현인까지 많은 사람이 있었건만, 생시에 아무리 영화로웠던들 죽으면 다 끝이었다. 오직 공자만은 포의(布衣)로 죽었으나 대대로 전해오면서 학자들의 종주(宗主)로 숭앙되고 있다" 하였다.

박찬욱 본부장 en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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